종교·신화

[스크랩] 오쇼 라즈니쉬

새무슨 2014. 11. 9. 01:13


안녕하세요,


요즘 오쇼 라즈니쉬의 글을 읽고 있는데 좋은 내용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미 오쇼 라즈니쉬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텐데요,

오쇼는 인도의 철학자이자 깨달음의 스승입니다.

많은 서구인들이 이에 매료되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따라 나서곤 하였습니다.

이에 미국에서는 그의 위험성을 알고 그를 감금하기도 했으며 그는 감금에서 풀려나자 바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죠.


오쇼 라즈니쉬는, 깨달음이란 인간 마음의 간교함을 깨닫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마음의 간교함?

마음은 양극단을 향해 반복적으로 치닫습니다. 어릴적엔 어른이 되고 싶고, 나이가 들어 늙으면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다음엔 미워함이 생깁니다. 그리곤 다시 사랑이 찾아오죠.

희망 또한 불안의 저 반대편일 뿐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일수록 깊은 명상을 원합니다. 그리곤 명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면 다시 욕망과 불안의 세계로 돌아섭니다.

이게 마음입니다.

그래서 동양보다는 불안과 긴장이 큰 서양 사람들이 명상에 더욱 집착을 한다고 합니다.

에너지가 큰 사람일수록 이 마음의 진폭이 큽니다


이는 줄타기에 비유하곤 합니다. 줄타는 사람은 좌우 균형을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한번 좌측으로 좀 기울면 가운데로 가기 위해 우로 몸을 기울입니다만 그 반동으로 다시 우측으로 기울게 되고,

계속 그 좌우 흔들림은 커지게 됩니다. 중앙에 머물러야 합니다. 이를 깨달음의 상태라고도 합니다.


극단의 진동에서 헤어 나오는 방법은 애써 저항하지 않고 한발짝 물러서 그저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그 순간 그 험난한 진폭을 멈출 수 있습니다. 사실 그 마음의 간교함을 인지하기만 해도 진폭은 멈추어 집니다.


관련하여,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 방법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써 이를 물리치려 하지 말라 합니다. 이 불안과 걱정은 나의 내면의 힘이기에 내가 강하게 맞설수록 함께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들이 내 속으로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완전히 내 안에 들어오도록 가만히 바라만 보면, 그 순간 그것들은 그대로 나가 버립니다. 아니 그냥 사라져 버립니다.

부정적 마음을 없애기 위해 애써 긍정을 찾는 것이 바로 중앙에 머무르지 못하고 양극을 향해 진동하는 마음의 간교함이라 할 수 있죠.


또한 사람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라는 양 극단에 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미래에 있지 말고 현재에 그냥 머무를 때 진정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멈추고 노화가 멈춥니다.



제가 읽는 책은(아직 다 못읽었습니다!), 오쇼의 장자 강의 두 권입니다.

여기서 애써 노력하지 말라는 장자를 독특한 꽃에 비유합니다.

들판에 놓여진 수만 송이의 꽃들은 모두 아름답습니다. 그 안에 꽃들이 애써 이뻐지려는, 더 건강해지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전자 차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은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생활을 해도 나이가 들면서 다 제각각이 되고 건강한 사람, 병든 사람 다양해 집니다.

바로 마음이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애써 노력할수록 그 부분은 망쳐지기 일쑤입니다.

마음의 간교함은 완벽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함이란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냥 놓아두는 것이 가장 완벽합니다.


돈을 쫓으면 돈을 잃기 일쑤입니다. 미인을 얻으려는 마음의 긴장이 강하면 미인은 떠나 버립니다.

인간 관계를 잘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수록 인간 관계는 틀어집니다.


오쇼는 말합니다. 이 세상에 그대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그대를 고통스럽게 할 수 없다.

다른 관점에 섬으로써 지옥을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 생각의 배열만 바꾸어도 지옥이 천국으로 바뀐다.


어느날 부처에게 한 사람이 와서 마구 화를 냅니다. 하지만 부처는 가만히 그걸 듣고만 있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가자 제자가 와서 묻습니다. 왜 가만히 듣고만 있냐고.

부처는 말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의 본성이고, 화를 듣고 가만 있는 것은 나의 본성이다. 화를 낸다고 해서 그가 천국에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 또한 화를 듣고 있다고 해서 그 순간 내가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쇼는 말합니다. 세상을 살되 세상에 소속되지 말라. 삶은 매 순간 미지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 길을 두려워한다면 삶은 정지해 버릴 것이다. 도의 사람만이 그 미지의 길로 행복하게 나아갈 수 있다.

역시 데이비드 호킨스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 내가 돈이 많아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건 저차원의 자유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하기를 바라거나, 어떤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저항하지 않는 마음의 상태라고 합니다.

도의 사람은 그저 미래에 펼쳐질 일을 여행하듯이 바라볼 뿐입니다. 죽음의 두려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가려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절대 갈 수 없다고.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어릴적 마음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그 상태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이거 저거 늘어 놓았는데, 인터넷에서 얻은 오쇼의 말 몇개를 적어 보겠습니다.


'만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면, 분명히 나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얻을 수가 있을까?' 당신은 사라져버리고, 전체를 획득하는 것이다. 당신이 잃어버리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비참함과 불안과 고뇌 뿐이다.


동물은 근심이 없다. 왜냐하면 무언가 되려 하지 않고 그냥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대가 약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도 많은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약한 것이다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밖으로 나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애써 증명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이 그 어느 누구도 아님을 깨닫는 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 무엇도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이 변한다.


그대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기억하라. 그대는 그것을 그대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만일 그대가 축복받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그것은 그대가 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저편 너머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사념이 그대를 방해할 때 그것들과 싸우지 말라. 그것이 들어오면 들어오게 두라. 그것들이 가면 가도록 두라.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 다만 무관심하라. 지켜보는 자가 되라. 방관자가 되고 관심을 갖지 말라. 그것이 곧 그대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세상은 바보가 말하는 얘기에 불과하다. 분노와 소음으로 가득 찼을 뿐,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얘기를 즐겨라. 하지만 그 얘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라.


'현재'에 불행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대는 놀랄 것이다. 이 순간에 불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럴 수가 없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 비참한가? 바로 이 순간에? 과거와 미래라는 두 비존재적 시간에 있을 때만 그대는 불행하다.


사람이 언어를 버리면 시간은 사라진다. 생각하는 것을 떨어뜨리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다.


다른 어떤 사람도, 그대 외에는 다른 어떤 이도 그대를 파괴할 수 없다. 그대 외에는 다른 어떤 사람도 그대를 구할 수 없다.


만일 사람들이 그대와 충돌한다면, 그대는 너무 단단한 벽인 것이다. 하나의 문이 되라. 텅 빈 공간이 되라. 그들이 지나가게 하라.





출처 : 나의사랑 나의우주
글쓴이 : 삼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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