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화

삶과 죽음의 비밀

새무슨 2018. 3. 1. 12:11


지난 몇년 간의 나 혼자만의 수학을 통해 한가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많은 성현들의 가르침과 종교의 가르침.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건강을 연구하는 스승들의 가르침들.

이것들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들을 하나로 꿰뚫어 제시하는 큰 절대불변의 이론이 있다.


천주고, 불교를 비롯한 종교들, 그리고 데이비드 호킨스, 호오 포노포노, 스베덴보르그, 디팩 초프라, 그 외에 많은 발견을 한 의사 선생님들과 한의학. 정말 다양하고 많은 얘기를 해 주며 행복과 건강, 그리고 영생을 얘기한다.

이 이론을 대입하면 이 모든 스승과 종교의 가르침이 예외없이 설명이 되고 근거를 제시하게 된다.


그건 바로, '사랑은 생명을 일으킨다' 이다.


1.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인간을 하나의 동물(포유류)로 보고 인간 생활도 결국 약육강식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직 인간이 아니라 정말 동물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분명 인간은 동물과 달리 언어를 가지고 있고 글을 창조했다. 이 놀라운 수준과 그나마 다음 수준으로 보는 돌고래 같은 고등 동물(?)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고 그 중간 수준을 이루는 종은 없다. 돌고래 이하부터 하찮은 미물까지는 마치 스펙트럼이 펼쳐지듯 그 사이 사이를 다양한 수준의 종들로 들어차 있다.  분명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


초기 종교들의 가르침은 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부분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동물처럼 힘으로 남을 갈취하거나 정복하지 말고 사랑의 힘으로 행복을 창조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동물의 본능은 죽지 않고 사는 것이다. 사람의 본능은 조금 더 발전해서 편하게 잘 살아 가는 것이다.

내가  노력한 것보다 조금 더 편하게 잘 살려면 필연적으로 남의 나에 대한 희생(노동)이 필요하다.

남을 힘으로 패고 눌러서 성취하면 동물적 방식일 뿐이다.

이 방식은 개인으로 보면 효율적이지만 인간 전체로 보면 그저 제로섬일 뿐이다.

내가 1 행복해지는 만큼 남은 1 불행해 지는 것이다.

남의 빵을 하나 뺏어 먹어서 내가 배불러 지면 남은 그만큼 배고파 지는 것이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는다.


남이 나를 위해 일하면서 내가 1을 행복해 지지만, 역시 남도 1만큼 더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이건 바로 사랑의 힘으로 인해, 남이 스스로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몽둥이를 들지 않아도 그는 나를 위해 기꺼운 노동을 한다. 그 이름이 선물이든 봉사든. (내가 그에게도 마찬가지)

나와 그가 1씩 행복해 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과 달리 행할 수 있는 '나와 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따가 설명하겠지만 동물의 목적인 '죽지 않고 사는' 것도 이것으로 쉽게 얻을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사회에서, 직장에서, 일을하면서 힘들지 않고 피곤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을 한다'는 마음 가짐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꾸준히 가르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라',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이다.

(평화는 결국 사랑에 의한 표출된 증상이다)

그리고 이웃과 조물주(결국 만물)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여기서 영생은 진짜 영생이다.


불교는 자비의 마음으로 이를 설명한다.

자비로 인해 남도 삶을 얻고 나 역시 몸과 마음의 편해짐을 얻는 것이다.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마음의 편해짐은 결국 세포의 재생을 도와 노화를 역행시킨다.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평화'도 같은 얘기다.



2. 데이비드 호킨스는 의식 지도를 그려냄으로써 삶과 죽음의 방향에 대한 비밀을 알아 내었다.

인간의 생명, 세포의 탄생과 소멸, 이것은 그저 에너지와 물질의 자연 법칙이라 생각해 왔지만,

데이비드 호킨스는 생명체의 정신(의식)이 크게 관여함을 밝혀 내었다.

여러 의식 수준들. 수치심, 증오, 두려움, 걱정, 자신감, 긍정, 희망, 사랑, 평화라는 각 의식 형태들이 매 순간 (영적 에너지를 통해서겠지만) 생명이, 아니 각 세포들이 죽음과 생명으로의 방향을 달린다는 것을 밝혀 냈다.

이것은 너무 자명하고 단순하다. 눈을 감고 수치심과 증오, 두려움, 걱정의 감정을 생각해 봐라. 분명 몸 속 각 세포와 장기들은 조금씩 노화가 진행되고 병으로도 이어진다. 아니 그냥 몸이 얼마나 불편해지는 지만 봐라. 아니, 장시간 그러고 나서 거울을 통해 얼굴빛을 봐라. 분명 세포가 노화되고 많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눈을 감고 희망, 사랑, 남에게의 조건없는 사랑 등을 장시간 생각해 봐라. 만병의 회복을 불러일으키는 잠에 빠질 수도 있고(위에서 언급한 부정적 의식들은 불면증을 불러일으킨다), 잠에 빠지지 않더라도 몸의 '편해짐'을 직접 느낀다. 이후 거울을 보고 얼굴이 얼마나 젊어졌는지 봐라. (거울보기 실험이라 하자)

얼굴의 모습은 각 피부 세포들의 끊이지 않는 연속 재생의 결과다. 아이들은 이것이 활발하여 언제나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가지며 노인들은 이것이 오래 걸려 아이들의 피부와 다른 것이다. 중년은 그 중간 정도이고.

긍정적 의식에 의해 분명 세포가 살아나는, 아니 세포의 집합체인 육체가 젊어지는 방향이 된다.


한걸음 한걸음이 결국 산 정상에 오르게 하거나 바다에 빠져 죽게 만들기도 한다.

평상시 계속되는 우리의 의식 수준이 결국 세포의, 아니 개체의 삶과 죽음의 방향으로 인도한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이러한 의식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노화 역행(즉, 암과 같은 불치병의 치료까지)을 증명한다.

놀라운 것이 아니다.


수천년 발전을 거듭한 한의학은 이를 항상 주장해 왔고,

현대 의학은 '면역학'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활발히 이를 증명하고 있고,

물리학은 양자역학 이라는 이름으로 이 정신 세계의 증상을 관찰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말한다. 이 사랑의 힘, 평화의 힘은 개체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개체를 넘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이웃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은 그 이웃을 치유시킨다는 걸 알아 내었다.

자세히 말하면 그 이웃의(다른 개체의) 세포 수준을 되살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을 부자가 되게 한 적은 없지만, 아픈 이들, 불치병에 걸린 이들을 숱하게 치료하였다.

인간에 대한 조건 없는 극도의 사랑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닐까.


천주교의 여러 가지 기록과 그림을 보면, 과거 당시 성인들은 하나같이 얼굴 주변에 동그란 빛을 그려 넣었다.

이는 분명 사실이다. 사랑이 가득한 마음은 얼굴 피부를 변화 시킨다. 마치 얼굴에 광채를 뿜는 듯이 만든다. 위에서 얘기한 거울보기 실험, 바로 그것이다.

얼굴 피부가 갓태어난 아이처럼 변하는 (엄밀히 말하면 세포들이 강한 생명력으로 회춘된) 것이다.


최근 서양의, 국내의 다양한 의사들이 마음가짐을 바꾸면서 암과 같은 큰 병을 완치시키는 놀라운 사례들을 증언한다.

위에서 말한 '거울보기'의 간단한 예가 티끌모아 태산에 오르듯이 반복 지속된 당연한 결과라 놀랍지도 않다.

의사들도 이제는 '생활습관'이라는 포괄적 표현에 '마음 가짐'을 넣는다.


병의 원인이 '약을 안먹어서'인가? 바로 극도의 스트레스와 반복된 자기 마음 괴롭힘 때문임을 알면서,

이세상 만물의 불변의 진리인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도 제거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의심들을 한다.

분명 시간이 걸리는 치료법이기 때문이리라.

명심해야 한다. 원인을 알면 결과는 쉽게 치료된다.

부정적 마음가짐으로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걸 안다. 그 역은 왜 안된다고 생각하는가?


4. 스베덴보리 (스베덴보르그) 의 영계 체험

스페덴보리는 중근대시대의 스웨덴 사람으로 어떤 계시에 의해 여러번 영계를 다녀온 사람으로, 유럽에서는 종교적으로까지 많은 추종자들이 있다.

국내에 들어온 책들은 번역자들의 사심이 들어가 있어, 가급적 영어 원문을 읽어 보기 바란다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죽어서 영혼이 가는 천국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미녀와 금은보화, 산해진미가 넘치는 곳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옥이 불구덩이 가시 방석 또한 더욱 아니다.

천국은 영혼들이 서로 사랑하고 신에 대한 사랑을 주고 받는 상태이고(곳이고), 지옥은 서로가 단절되어 각 영혼이 살아서 행하던 탐욕스런 마음에 잡혀 있는 상태일(곳일) 뿐이다.


인간은 살아 생전 동물적 본능에 의해 죽지 않는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물욕, 성욕, 지배욕,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 질투심, 이 모두가 결국 '내가 죽지 않고 잘 살기'에 대한 강한 욕망이다.

사람이 죽어서 육체가 없어지고 정신(영혼)만 남는다면?

솔직히 그 이후에는 앞에서 열거한 그 모든 욕망들이 필요 없게 된다. 이미 죽음이란 것이 의미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러한 욕망을 탐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 이 아래 부분은 나의 생각을 덧붙인 것이다 --

정신(영혼)은 상상으로 인해 모든 걸 만들어 낼 수 있다.

즉, 정신의 세계, 영혼의 세계 에서는 상상으로 다 만들어 낸다.

앞서의 욕망을 그대로 못버리는 사람들은 죽어서도 남(타인)은 필요 없고 그저 자신이 갈구했던, 금은보화, 음란, 폭력(남을 때려 잡음으로써 나의 생명을 독독히 함), 소유 만을 계속 만들고 내 장소에 쌓아둔다.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주변에 타인의 영혼과는 계속 스스로 멀어지려 한다. 왜?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바로 이곳이 지옥의 모습이다.


살면서 사랑의 비밀을 깨닫고 실천한 사람들은, 죽어서 영혼이 되어도 이 큰 가치를 알기에, 서로 모여서 사랑을 계속 나누는 상태가 된다.

알고 보면, 영혼의 세계에서는 더이상 죽음이란 것이 없기에, 유일한 '자산'은 이 '사랑'일 뿐이다. (살아서도 이것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실제 표현되는 가장 큰 자산이지만서도.물론 물질도 매우 큰 주요 자산이다. 그래서 생전에는 사랑의 비밀을 알기가 어렵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듯 서로의 영혼들이 모여서 서로 간에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그 매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는 곳이 바로 천국이다.

물론 신에 대한 사랑의 주고 받음도 필수다. 진정한 극도의 행복이다. 바로 이곳이 천국이다.


그래서 스베덴보르그는 말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는 절대 천국에 갈 수 없고 타인과 신에 대한 사랑으로만 갈 수 있다고.


5. 세포가, 그리고 세포들 간에 사랑을 느낄 때 재생이된다.

이는 화분에 '사랑한다'고 써붙이는 것으로도, 물을 받아놓고 사랑을 외친다음에 물 입자를 들여다 보는 것으로도 얘기한다.

단순히 '거울보기' 실험으로도 알 수 있다.

종교와 성현들의 가르침이 결국 이 하나에 대한 다양한 표현일 뿐임을 알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힘을 통해 다른 개체의 세포에 까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결국 이 힘은 조물주가 세계라는 물질에 세상이라는 영적 에너지를 이룩한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