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신화

[스크랩]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 아니타 무르자니

새무슨 2014. 7. 30. 10:55



 

책제목: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원제: Dying To Be Me.

지은이: 아니타 무르자니 Anita Moorjani

출판사: 샨티

 

추천: **** 4 Stars

 

<책 소개>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암을 앓다가 죽음의 순간을 경험하고 돌아온 인도 여성이 '암, 임사 체험, 그리고 완전한 치유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써 내려간 자전적 이야기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아니타는 임파선 암에 걸려 4년간의 투병중 혼수 상태로 병원에 실려왔다가, 혼수 상태 중 임사 체험을 하고 몸으로 돌아오면서 병에서 완전히 회복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닷새 만에 병세가 호전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진 그녀는 이후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판명돼 입원 5주 만에 퇴원했다. 5년 뒤 세계적 영성가인 웨인 다이어의 권유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려가면서 왜 암을 앓게 되었는지, 임사 체험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것들을 깨달았는지, 임사 체험 후 어떻게 암이 완벽히 치유되었으며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인지를 진실한 언어로 들려준다. 
"다른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바깥쪽으로 더 넓어져가면서 나는 모두이자 모든 것이 되어갔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임사 상태에서 자신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모든 것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임을 느꼈다. 천국도 어떤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깨달음이 왔고, 자신이 지금 바로 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전체와 연결된 하나임을 확연히 느낀 순간 아니타는 몸이란 내면 상태의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암에 왜 암에 걸렸는지 단번에 알아차린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사랑하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신의 진실을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죽음으로의 여행을 계속할지, 다시 몸으로 돌아갈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 몸으로의 회귀를 선택한 그녀는 자신이 아직 이루지 못한 목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치유의 도구"로 쓰이는 데서 찾는다. 아니타는 자기 밖에서 사랑과 인정을 구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한 그것은 채워질 수 없다는 것을 영혼의 차원에서 경험했다.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자신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할 것을 권한다.

 

아니타 무르자니 Anita Moorjani

암과의 사투 끝에 죽음의 문턱을 넘어갔다 돌아온 인도인 여성이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난 뒤 줄곧 홍콩에서 살았다. 2002년 4월, 임파선암이 발견된 뒤 4년 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2006년 2월 2일, 악성세포가 차지한 그의 몸은 마침내 기능을 멈추었고, 그때 그는 임사체험 상태로 들어간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던 삶에 대한, 존재에 대한, 우주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암을 만든 건 바로 두려움과 자기 사랑의 부족이 합쳐진 결과였음을 알게 될 뿐 아니라 삶의 두려움들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정한 장엄함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왜 우리가 사랑일 수밖에 없는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등을 깨닫는다. 그 경험 후 아니타의 몸은 씻은 듯이 나았고, 임사 체험의 경이로움과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 통찰을 이 책에 담았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홍콩에서 살면서, 전 세계에서 열리는 여러 회의와 모임에 초대받아 임사 체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 있다. 또 홍콩대학교 행동과학부에서 열리는 불치병 받아들이기, 죽음에 직면하기, 영성의 심리학 등을 주제로 한 강연에 단골 강사로 초대받아 사람들에게 영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아가고 있다. 아니타의 웹사이트는 www.anitamoorjani.com이다. 

<이상 출판사의 소개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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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글들>

 

....아름다운 사기그릇에 담긴 아버지의 재를 들고, 푸나 동쪽의 알란디 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인드라야니 강가에 서 있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오빠가 유골함을 열어 천천히 기울이자 산들바람에 재가 날리며 수면 위로 흩어졌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강물에 재가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멋진 분에게 어떤 말로 작별의 인사를 해야 할까?

 

...내 영혼은 이 몸과 물리적 세상을 넘어 멀리 확장해 나아갔다. 영혼은 바깥으로 더 멀리 멀리 뻗어 나아가더니 마침내 모든 존재를 아우르는 것은 물론 이 시공간을 넘어 또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장되었고 동시에 그것을 포함했다. 사랑과 기쁨, 황홀경, 경외감이 내 안으로 나를 뚫고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그 안에 잠겨버렸다. 나는 가히 내 상상을 뛰어넘는 거대한 사랑에 집어삼켜지고 둘러싸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고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은 우리가 여기서 경험하는 것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우리의 현세적 마음 earthly minds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연속적인 장면들로 바꾸어놓았을 뿐, 실제로는 우리가 몸을 통해 표현하지 않을 때는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시간이 직선적이지 않다면 장면의 연속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질 텐데, 이런 말이 선뜻 이해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五感은 어느 순간이든 시간 속의 한 지점에만 집중하도록 우리를 제한하는 것 같다. 그러고는 시간의 이 특정 지점들을 하나로 꿰어서 직선적 시간 현실이라는 망상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우리의 신체성 physicality 또한 주변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제한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혹은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볼 수 있는 것에만 우리를 묶어 놓는다. 그러나 몸이라는 한계가 없을 때 나는 나와 연관된 모든 시간과 공간의 지점들을 한꺼번에 이해했다.

 

...신이란 '존재 a being' 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 a state of being' 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상태'에 있었다. 나는 지금껏 내가 알아온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내 삶을 이루었음을 알았다. 내 경험이란 저 커다랗고 복잡다단한 색과 모양으로 된 무한한 테피스트리에 수놓아진 한 가닥 실과도 같았다. 갖가지 다른 색깔의 실들은 내가 맺고 있던 관계들, 나와 연이 닿은 온갖 삶들이었다. 우리 엄마를 나타내는 실, 아빠와 오빠, 남편, 그 밖에 내 삶에 들어온 이들을 제각각 나타내는 실들이 모두 다 있었다. 그들이 나와 긍적적인 관계에 있든 부정적인 관계에 있든 상관없이 말이다....각각의 모든 만남이 얽혀서 그때까지의 내 인생이라는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 속의 한 가닥 실에 지나지 않았지만, 또한 완성된 전체 그림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다. 이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자신에게, 내가 만난 모든 이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게 언제나 내 고유한 본질을 표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되려는 노력은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내 자신을 앗아가기만 했다!...진정한 내 자신이 되지 않는 것은 또한 내가 여기에 와서 되고자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존재의 모습을 이 우주로부터 빼앗는 것이었다.....나는 언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장엄할 뿐이라는 앎이 나를 가득 채웠다.....내가 이 우주의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판단이 아니라 부드러운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별히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내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였다....나는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과 살아있는 존재들만이 아니라, 밖으로 넓어지고 넓어져 우주 안의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다 하나로 엮여 있는 통합체였다. 모든 사람과 동물, 식물, 곤충, 산과 바다, 무생물, 우주까지....나는 전체 우주가 살아 있으며, 모든 생명과 자연이 다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무한한 전체  infinite whole에 속해있는 것이다. 나는 전체 생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통합체의 일면들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며, 우리 각자는 집단적 전체에 영향을 주고 있다.....매 순간 속에 무한한 가능성이 들어 있고, 시간의 한 지점이란 내가 그때까지 해온 모든 결정과 선택, 생각들의 頂点과도 같은 것이었다.내 수많은 두려움, 그리고 나의 엄청난 힘이 바로 이 병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바로 그때 나는 내 몸이 내 내면 상태의 반영에 불과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일 나의 내적 자아가 자신의 광대함을, 萬有 All-that-is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내 몸은 곧 그것을 반영하여 삽시간에 치유될 것이었다.....지금까지 그 至難한 삶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기실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그것은 바로 내가 결함이 있다는 그 어떤 느낌이나 판단 없이 그저 내가 되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의 본질은, 그 핵심이 순수한 사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순수한 사랑이다.....사랑이 되는 것과 본연의 자기 모습이 되는 것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그저 내 본모습인 사랑이 됨으로써, 나는 내 자신과 다른 이들을 치유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같은 전체의 일면들이라면, 그리고 그 전체가 조건없는 사랑이라면 당연히 본래 우리도 사랑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진실로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의 진실대로 사는 것, 본디 제 모습인 사랑이 되는 것....내가 새롭게 알게 된 이 진실을 확증해 주기라도 하듯, 아버지와 친구 소니가 내게 다가와 말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진짜 네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돌아가 두려움 없이 네 삶을 살려무나!'

 

난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삶은 그저 기쁘고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란 걸.

 

....의학전문가들이 그 자연 치유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주된 질문, 즉 "몸이 죽음에서 치유 쪽으로 선회되도록 스위치를 누른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나는 답을 알고 있다....하지만 그 답은 의학계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삶의 마술을 보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주변을 보며 경탄하고 열광하는 나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뿐 아니라 그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도 경탄과 열광의 대상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일상에 사로잡힌 것 같았고 그들의 마음은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에만 가 있었다. 임사 체험을 하기 전 바로 내 모습이었다. 모두들 뭔가를 하는 데에 사로잡혀서 그저 순간에 머문다는 게 어떤 것인지 기억하지 못했다.....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애써야' 한다는 느낌은 여전히 들지 않았다. 난 그저 내 자신이면 되었다. 두려움 없이! 그것은 곧 내가 사랑의 도구가 되게끔 나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이 지구를 위해서나 우리 자신을 위해서나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혹은 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그저 살아있다는 것, 여기서 나를 표현할 기회를 한 번 더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제 더는 이 위대한 모험의 단 1분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가장 많이 '내'가 되고 싶었고, 살아있는 이 기분 좋은 순간을 조금도 놓치지 않고 음미하며 즐기고 싶었다....웃고 즐거워하는 게 더 중요해 보였다.....이제 더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병도 나이 듦도 죽음도 돈이 부족해지는 것도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닐 때 두려워 할 것은 별로 없다. 죽음이야말로 늘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지지 않는가. 죽음이 겁나지 않는다면 그 밖에 두려워할 것이 뭐가 더 남겠나?....사람들이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불편했다. 예를 들어 모두들 돈과 경제적인 문제로 지독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즐기고 감사할 만한 다른 아름다운 것들이 무척이나 많은데도 말이다. 그러면서 단지 돈을 위해 다른 모든 것 -사랑, 관계, 재능, 창조성, 개성 등등-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안으로부터 보는 관점 Inside-out view을 갖는다는 건 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온 우주가 영향을 받는다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전체 the Whole가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면 우주도 행복하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다른 이들도 전부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평화로우면 모든 창조물이 평화롭다.....'중심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는 나를 느낀다는 뜻이다. 바로 내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중심이 곧 우리 모두가 존재하고 있는 유일한 장소이며, 그러니만큼 이 중심 자리를 가슴으로부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우리 모두가 하나라면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도 이 우주 전체를 '위하여' 일어나는 것이다....치유는 비단 육체적 치유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감정적 치유이기도 했다. 우리의 감정은 사실상 이 물리적 현실을 이끌어가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한한 우주에서 각기 다르면서도 하나도 빠질 수 없는 각각의 부분들이라는 사실. 우리 각자는 지구를 치유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일하고 있는 더 커다란 테피스트리의 부분들이다. 우리의 유일한 의무는 늘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지는 것, 그리고 허용하는 것뿐이다.....나는 내가 미리 예상한 결과대로 되느냐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좋다는 것을 믿는다. 내가 내 자신이 될 때, 나의 그 독특하면서도 완전한 장엄함이 내 자신과 모두에게 가장 유익한 방향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러니 내 자신이 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그때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진실로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이 가장 마술적인 방식으로, 상상도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내 삶 안으로 들어온다. 내 본연의 모습인 힘과 사랑을 날마다 보여주면서.

 

나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얻으려고 평생을 들여 노력하는 바로 그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내 영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조건없는 장엄함이 언제나 내 곁에 있었는데도, 육체적 삶이 그것을 가려버린 것 같았다....그것을 이해하자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지금 무엇에 가 닿아 있는지가 보였다. 그것은 나 뿐 아니라 모두가 닿아 있는 원천이었다.....내가 마침내 병이 나은 이유는 내 진정한 영혼이 안에서부터 빛을 발하도록 내 스스로 허용했기 때문이다. .....내가 치유된 것은 내 파괴적인 생각들을 다른 생각으로 고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생각들이 그저 말끔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 thinking의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니라 존재being의 상태에 있었다. 그것은 순수 의식 pure consciousness이었다. 바로 내가 장엄함이라고 부르는 것! 이 하나임 oneness의 상태는 二元性을 뛰어넘는다. 나는 진정한 내 자신에 연결될 수 있었다. 영원하고 무한한, 전체를 아우르는 나의 일부와. 이는 마음이 물질보다 우위에 있다는 식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임사 체험에서 시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며 우리가 그 사이를 관통해 지나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이는 모든 시간의 지점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저쪽 세상에서 우리는 더 빨리 갈 수도 있고 느리게 갈 수도 있으며, 심지어 뒤로 가거나 옆으로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물리적 차원에서는 감각 기관이 우리를 제한한다. 눈은 이 순간에 보이는 것만 보고, 귀는 지금 들리는 것만 듣는다. 마음은 오직 한 순간에만 존재할 뿐이다. 나중에 그 순간들을 한 줄로 엮어서 직선적 시간의 진행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몸에서 빠져나가면 우리는 시각이나 청각, 촉각, 미각, 후각 같은 것이 아닌 자각 awareness의 상태에서 모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든다. 우리는 순수의식이다....이런 이유로 나는 어떤 사람이 '전생'으로 해석됨직한 뭔가를 언뜻 보았다고 할 때 그들이 실제로  본 것은 '평행' 존재 혹은 '동시' 존재였다고 믿는다. 모든 시간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만큼 다른 이들의 현실을 얼핏 본 것이 내 현재 순간으로 스며들어 내 의식을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 그들의 현실이 마치 기억처럼 우리의 의식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기로 선택하는 것은 사랑과 열정, 그 밖에 수많은 인간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감정들은 순수 의식이나 '하나임' 상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만약 이 행성에서의 삶이 카메라가 돌아가는 무대의 공연과 같고, 우리가 원해서 이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우리의 이 현실은 표현의 무대이다. 사후의 삶에 필요한 경험을 익히거나 쌓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 같지는 않다.그런 건 별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그보다 우리는 이 물리적 우주와 그 안에서의 우리 삶을 경험하고 펼치기 위해 여기에 와 있다. 여기에서의 삶이야말로 지금 순간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상태라는 것. 열반을 경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의 진정한 장엄함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모든 시간과 경험은 바로 지금 존재하고, 우리는 그저 우리의 장엄함을 표현하면서 이 물리적 세상 속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앞으로 무엇이 닥쳐올지 불안 속에서 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미 그 일부로 있는 에너지를 인식하고 삶의 측면들 하나하나에서 '사랑이 될' 수 있다.....무한한 나 안에는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모두 들어 있다. 나는 곧 우주 에너지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바로 우주 에너지이다....나로부터 분리 된 외부 창조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external 라는 낱말 자체가 분리와 이원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리는 힘차게, 사랑으로,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물리적 세상과 계속 관계를 맺어갈 수 잇다.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상태이다....여기 있든 다른 세계에 있든 다를 것이 없다. 모든 건 우리의 더 크고 확장 된, 무한하며 장엄한 자아가 경험하는 것의 서로 다른 부분들일 뿐이다. 우리의 진짜 집은 각자 안에 있고, 어디를 가든 우리와 함께 있다.

 

치유에 이르는 영적 길에서 필요한 원칙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면 첫 번째로 꼽고 싶은 원칙은 단연 날마다 최대한 많이 웃으라는 것이 될 것이다. 자기를 보고 웃어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것이 어떤 형태의 기도나 명상, 찬송, 혹은 식생활 개선보다도 우선이다. 유머와 사랑의 눈으로 보면 일상의 어떤 문제도 결코 심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우리 삶이 우리의 기도이다. 우리의 삶은 이 우주에게 주는 우리의 선물이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남겨두고 가는 기억들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는 우리의 유산이 될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 기쁨을 주변에 퍼뜨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또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