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였습니다!
청 우(스님, 중생사 주지) 사람은 누구나 평안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건강한 생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은 시공간과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건강을 얻고자 한다면 몸과 마음의 현실에 눈떠야 합니다. 몸의 변화 작용을 모르면 제대로 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을 잘 못 쓰면 아픕니다. 병이란 내 몸에 맞지 않는 생활과 생각으로 생기는 고통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나 경험도 몸에 맞지 않으면 더한 고통이 됩니다. 어떤 고통이라도 잘 들여다보면 잘못된 인식과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 잘못된 생각들은 흔히 현실과 다른 남의 말이나 그릇 전해오는 관습, 기득세력의 세뇌교육 그리고 무지와 편견 등이 만들어 냅니다. 몸과 마음의 인과를 바르게 만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항상 평안할 것입니다. 생각해 보건대 아프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저의 경우 참으로 어려워서 인생은 오십이건만 지천명이란 말은 흔연히 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지난 세월과 달리 병으로 고통받지는 않습니다. 몸에 병이 없으니 마음의 근심도 그만큼 줄었습니다. 이 은혜와 가피는 해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선생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십년 전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고쳐야 겠다는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절집 생활이 몸에 배어서 생로병사를 자연스레 여기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겠지만 암은 감기 등과는 달리 비싼 병이기에 시주의 은혜를 받아서 수행하는 저로서는 큰 돈을 장만할 수 없을 뿐더러 시주님의 지중한 정성으로 어렵게 몸을 살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아프면 많은 손이 필요한 것인데 혼자 사는 수행인이 긴 시간 기약도 없는 일에 남의 귀한 손을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다행히 암을 참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복도 작은 수행의 결과일테니 이 또한 불가에서 입은 은혜입니다. 제 인생은 정리랄 것도 없고, 제 수행은 너무 작아 스승님과 시주님의 은혜에 부끄러운 것이어서 불초함을 참회하며 존경하는 선배스님이 계시는 덕유산 토굴로 주검을 의탁하러 갔습니다. 선배스님의 보살핌은 매우 극진하셔서 큰 나무 아래서 땀을 식히듯 저를 쉬며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하루는 스님께서 “마음이 평안하시네?” 하시기에 “아주 편안합니다.”하고, “미련은 없으신가?” 하시기에 “없습니다.”하고 웃었더니 “스님께선 큰 스승(부처님)처럼 공부를 마치셨네요.” 하시는데 큰 바위 밑에 깔린 듯 숨이 막혔습니다. 죽음 앞에 출가본분사를 까맣게 잊고 있는 한심한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 수치와 죄송함은 어떻게든 씻고 싶었습니다. 온 밤을 생각하다 얼마간이라도 기력을 찾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지인의 소개도 있었지만 언젠가 방송에서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강의하시던 장두석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기억으로 ‘이치에 깊으신 말씀이며, 세상에 참 드무신 분’이라고 느꼈던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곧바로 민족생활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촉수를 하시곤 “몸을 이렇게 더럽게 썼어?” 하시는 말씀에는 안타까움과 질책이 절절하셨습니다. 선생님의 한말씀 한말씀은 내 삶의 뿌리에서 물을 끌어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도 나를 몰랐지?” 마치 굶주린 범과 같아서 마음만 앞섰지 제 몸 하나 추스릴 지혜가 없었던 저는 선지자의 지혜바다를 헤엄치듯 배움에 기뻐하였습니다. 21일 단식 중에 신기하게도 몸에 기운이 솟아났는데 맑고 싱그러워 십대소년이 된 듯 하였습니다. 몸의 이곳저곳을 압력기계로 팽창시키는 듯한 압통은 금세 골과 몸을 산산조각 낼 것 같았는데 그 통증이 뚜렷이 잦아들었습니다. 눈, 코, 입, 귀 등의 감각이 새롭게 피어나고 보름 넘게 먹지 않았어도 검은 기름 같은 변을 보기도 하였는데 교육 중에 들었던지라 몸이 회복되어 감을 느꼈습니다. 21일 단식과 회복식을 마쳤을 때 통증이 거의 사라진 제 몸은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곧 죽을 줄로만 믿었던 몸을 두어 달 만에 되살린 것입니다. 사람이 저를 모르고 사는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였습니다. 삶의 근본이 되고 사회구성의 기초가 되는 몸과 토양에 대한 교육을 어느 학교나 기관에서도 받을 수 없었던 현실이 참으로 어이없이 황당하였고,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시대조류에 휘둘리는 국가사회의 운명이 걱정스러워졌습니다. 민족생활학교의 교육이 생명과 문화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하였습니다. 제 문화를 잃고 나라를 빼앗기는 것도 결국 제 자신과 환경을 망각하는 것이 시초이며 이유라는 것을 더욱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한두 달 산에서 회복기를 더 보내고 지인들을 만나자 저를 덥썩 끌어안고 꺽꺽 우시는 겁니다. 몰골을 보고는 ‘스님이 영 죽게 되었구나’하고 여겼답니다. 발병과 치유 등 그간의 사정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제게 주신 마음을 어떻게 보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하고는 민족생활학교의 교육받기를 권하였습니다. 저를 믿고 바로 스무 분쯤이 10박11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와 이 분들의 안내로 수술을 않고 건강을 찾으신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 주변의 거의 모든 분들이 민족생활학교 교육을 받으셨는데 이 분들 또한 해관 선생님과 민족생활학교와의 소중한 인연을 감사드리며 한결같이 입을 모읍니다. ‘아프더라도 민족생활학교에서 배운 대로만 하면 병이 없어진다. 감기나 더위, 추위도 타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병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없어졌다며 암보험을 해약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삶을 설계하고 경험하기를 머뭇거리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저도 신명이 납니다. 병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되었으니 실로 전화위복이란 이런 것일 겁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가기에 가지가지 생각과 주장과 가치와 진리도 넘실댑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마치 조류(潮流)와 같아서 방울방울 물이 합쳐 큰 물결을 이룹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소위 제도권이나 주류라고 하는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파도에 휩쓸리듯 그들의 이해관계에 끌려가 나를 잃고 맙니다. 사실 우리가 알거나 느끼는 어느 상황이나 어느 것도 고정체가 아니어서 딱히 ‘이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진리도 없을 것입니다. 존재는 이렇게 하염없이 섞이고 흩어지고 변화하는 대자연일지니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과 환경의 인과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소금의 맛은 소금이듯 몸의 진리는 내 몸입니다. 누구의 주장주의를 따르기 이전에 내가 먼저 내 몸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면 나를 남에게 내어주게 됩니다. 나를 남의 생각에만 의존하고 맡긴다면 이미 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요. 내 몸과 마음을 바로 봅시다. 무지는 있어도 병은 없습니다. 병고를 통해 사실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주신 해관 선생님께 다시금 절하며 감사드립니다. 민족생활교육이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부터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두 손을 모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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